자신의 감정대로 사는 것이 자신을 행복의 길로 이끈다

자신의 감정대로 사는 것이 자신을 행복의 길로 이끈다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물질만능주의와 경쟁적 사회구조로 인해 성공의 기준이 돈을 많이 벌거나, 치열한 경쟁에서 이긴 위치에 서는 것이 모두의 목표인 것처럼 주입받고 있다. 가정에서든 학교에서든. 그러다 보니 우리 사회의 어린이나 청년들은 그런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서 경쟁 사회에서 승리한 것으로 인정되는 것들을 자기 삶의 목표와 꿈으로 편입시키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은 자신 속에 가지고 있다. 그런 것들을 내 안에서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을 이성적으로 계산해서 짜 맞추기도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라캉이라는 철학자는 ”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라고 말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외부의 것들을 이성적 분석을 통해서가 하는 것이 아니다.
내 안의 감정적 느낌으로 판단해야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계산해서 얻어지는 결과가 아니라 내 안의 울림을 확인하는 것으로 알 수가 있다.
자신의 감정이 욕망하는 것, 자신이 충동적으로 하고 싶은 것이 자신이라는 존재가 원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면 내가 피아노 소리를 들으면 너무 좋고 기쁘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피아노 감상 또는 피아노 연주이다. 내가 수학 문제를 풀 때 너무 행복하고 제대로 풀었을 때 희열을 느낀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은 수학이다.
그런데 피아노 치면 돈을 많이 벌고 타인에게 좋은 평가를 얻을 수 있으니깐 피아노를 친다거나, 수학을 잘하면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으니깐 한다면 그것은 외부적이고 이성적 판단에 기인한 것들이다.

인간은 자신의 감정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로 할 때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나 자신의 감정이 하고자 하는 것을 충족시킬 때 기쁨을 느낀다.
기쁜 삶을 살아갈 때 행복한 사람으로 자기 자신을 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은 감정에 충실히 반응하는 삶이다.
그런데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하다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타인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
그럴 경우에만 이성의 힘으로 절제를 하면 되는 것이다.
어디 까지나 감정이 우선이고 이성이 부차적이다.

그동안의 우리 사회는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라는 명제에 충실하다 보니 이성적인 것이 가장 인간다움이라는 가치관이 팽배해져 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는 감정적 기쁨을 느끼는 일을  할 때 만족해하는 동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것을 고민한다면 그것의 판단 기준은 이성이 아니라 나의 감정에 충실하게 반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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