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은 발전의 시작이다-

우리가 아는 방황이라는 것의 이미지를 그리 좋은 이미지는 아니다. 좋지 않은 이미지로 치부되는 이유는 우리가 살아온 사회의 획일성 때문이다. 정치적으로는 조선 시대를 거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거의 독재정권 하에서 생활해 왔다. 독재정권은 기존에 자신들이 만든 질서와 규범의 테두리 내에서 사고하고 행동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런 테두리를 벗어 날 경우 공권력을 동원해서 가차 없이 규제를 해왔다. 당연히 그들은 교육을 통해서 그들이 만든 테두리를 벗어나는 일탈에 대해 암묵적으로 죄악시하는 교육을 시행하여 왔다. 사회적으로는 조국 근대화라는 미명아래 개인의 인권은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고, 근로자는 오로지 경제발전을 위한 도구로 치부된다 보니 기존 사회적 질서에 어긋나는 생각이나 행동은 허용될 수가 없었다. 가정에서도 가부장제 도하의 명령과 복종의 관계 속에서 그것에 어긋나는 발상을 한다는 것은 불효로 치부되고 터부시되었다. 위와 같은 시대적 맥락에서 획일적 문화에 길들이기를 원하는 기득권층은 무조건적인 복종을 하지 않고 방황하거나 기존 질서에 대한 의심은 비도덕적인 정신 상태로 치부될 수밖에 없었다. 방황이라는 것은 기존의 신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신념으로 가는 과정의 과도기적 정신 상태이다. 사람의 정신적 발전은 기존의 것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용만으로는 절대 발전할 수가 없다. 기존의 것을 의심하는 과정을 통하여야만 새로운 진리들이 발견되어 질 수가 있다. 물론 기존의 것들을 의심하고 새로운 것을 정립하는 정신적 과정은 고통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그런 고통을 회피하고자 수많은 사람은 기존의 질서를 무조건 맹신하게 된다. 정신적 방황을 회피하려는 것은 정신적 게으름일 뿐이다. 게으른 사람에게는 성취할 것이 없듯이 정신적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방황하는 과정이 빠진 성장은 없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한 조언

결혼생활에 대해서 지나친 집착이 있는 사람은 대개 현재의 삶에서 많은 외로움이나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공간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즉 현재의 일이나 기타 삶의 전 영역에서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온전히 몰입할 꺼리가 없다는 이야기와 동일하다. 그래서 자신의 채움 받지 못한 것들을 오직 결혼생활을 통해서 보상받으려는 것이다. 혼자만의 삶에서 많은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의 결혼 후의 삶은 상대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요구로 연결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자신의 내면의 공간의 크고, 그런 채워지지 않는 영혼의 허기짐은 결혼 상대를 통해서 채우려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상대가 그것을 충실히 채워준다면 관계가 틀어질 염려는 없다. 하지만 상대도 그런 채움을 받기를 원하거나 일상이 힘들다면 관계는 힘들어지게 된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에 불만을 느끼고 되고, 그런 불만이 쌓인다면 결국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자신의 과도한 내면적 결핍은 상대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낳는 법이다. 원만한 결혼을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 과도한 결핍에 빠지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기 혼자만의 삶 속에서 기쁨을 누릴만한 거리를 찾아야 한다. 그것이 현재 하는 일이건, 아니면 취미이건 간에……. 자신만의 삶에서 온전히 기쁨을 누린다면 상대에 대해 지나친 기대도 하지 않을 것이고, 자신만의 삶에서 누린 기쁨은 온전히 상대에게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될 것이다. 결혼이란 외로워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서 하는 것이다. 이런 원리는 꼭 결혼생활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인간관계에서 통용되는 원리이다. TV에서 한 중년의 여가수가 한 인터뷰를 들었다. 자기 일 생중에 최고의 선택은 결혼하지 않은 것이라고, 그런 사람은 굳이 결혼하지 않더라도 행복할 것이고, 결혼한다고 하더라도 행복한 결혼 생활이 될 것이다.. 채워지지 않는 결핍은 필연적으로 다른 것에 대한 집착을 낳는 법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집착이 온전히 채워지지 않으면 기대가 컸던 만큼 본인은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 것이다….

지식은 관점을 우리 삶에 응용하는 것이다-

먼저 위대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인식론에 대해서 알아보자. 인식론이란 인간의 인식능력에 대해 연구를 하는 학문으로서, 철학의 한 분야이다. 칸트의 인식론은 철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조차 100%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아주 난해한 철학 이론이다. 철학 전공하는 학자 중에 오직 칸트만 연구하는 분들도 있다고 한다. 여기서 칸트의 인식론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보다는 삶에 응용 가능할 정도만 대략 알아보려고 한다. 칸트의 인식론을 요약해보면 수동적으로 우리의 감각을 통해 사물의 감각 경험적 재료들을 받아들이면, 능동적으로 이성을 통해 질서 정연한 인식으로 구성하고 모양, 색깔 ,크기 등을 조합해서 물체의 실체를 인식한다. 우리가 어떤 물체를 바라본다면 우리는 그 물체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물체가 반사하는 직사광선을 시신경이 받아들여 이것이 뇌로 보내지고, 뇌가 해석해서 드디어 우리가 ‘본다’라는 경험을 하게 된다. 가령 예를 들어보면 종이컵이 있다고 가정할 때 원통형 모양, 흰색의 표면, 종이 재질 등을 우리의 감각으로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우리의 이성은 그런 것들을 조합하고 정리해서 종이컵이라는 실체를 인식한다는 것이다. 칸트 사상의 핵심은 인간은 실제 물체 그 자체는 우리가 알 수 없다고 한다. 우리는 단지 감각으로 보인 것들을 우리의 인식체계를 통해 해석할 뿐이라는 것이다. 빛의 경우 우리는 가시광선만 시각으로 확인할 뿐 적외선이나 자외선은 우리의 시각으로 확인할 수가 없다. 소리의 경우에도 우리는 한정된 주파수 내의 소리만 청각으로 확인 가능할 뿐이다. 사람 귀에는 안 들리지만, 모기에게만 들리는 주파 수음량을 내보내는 모기 퇴치기도 있다. 개에게 빨간 장미꽃은 노란색으로 제비꽃은 파란색으로 보인다. 곤충의 눈으로 보면 사물은 사람이 보는 것과는 다르게 보인다. 그런데 우리가 보는 것은 100% 정확하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보통 인간들은 자신이 직접 본 것, 직접 들은 것, 자신이 경험한 것들은 100% 신뢰를 한다. 그런 사람들은 다른 누가 반론을 제기한 다해도 자신을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에게 칸트는 우리 인간의 감각과 인식능력은 그렇게 100% 정확한 것이 아니라는 걸 그의 철학을 통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다. 즉 자신의 경험만 무조건 신뢰하지 말고, 그것을 판단하는 자신도 의심해보라는 것이다. 과거 인류 역사를 보면 모든 사람의 감각으로 100% 확인한 것을 부인한다고 해서 핍박했던 경우가 있다.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것은 지금은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지만, 몇백 …

니체가 전하는 바람직한 삶

실존 철학자 니체는 신이 영향력을 상실한 시대에 인간은 어떤 삶을 살아야 행복 하는지 이야기했다. 먼저 그는 사람의 삶의 형태를 3가지로 정의하였다. 첫째로 낙타와 같은 삶, 둘째는 사자와 같은 삶, 셋째는 어린아이와 같은 삶을 이야기 하였다. 첫째로 낙타와 같은 삶은 전혀 저항하지 않고 오로지 남이 시키는 대로 사는 삶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냥 노예처럼 자신이 하고픈 일이 아니라 남들이 시키는 일만 하는 수동적인 삶을 이야기 한다. 이런 낙타와 같은 삶을 산 사람들은 생을 마감하는 순간 자신의 삶을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다. 둘째로는 사자와 같은 삶을 이야기 했다. 사자와 같은 삶은 기존의 억압에 저항하고 자유를 누리려고 하지만 정작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경우이다. 쉽게 말해서 반항은 하는데 자기 삶의 방향이 무엇인지 몰라서 방황하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전형적인 사춘기 시대 아이들의 모습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셋째로는 어린아이와 같은 삶을 강조하고 인간이 가야 할 방향이라고 제시하였다. 어린아이는 천진무구하고. 자신의 욕망대로 움직이는 게 어린아이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무조건 한다. 그리고 특별한 목적에 의해서 기획된 삶이 아니라 그냥 당장 재미있는 놀이를 한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서부터 사회적 통념과 세상이 원하는 기대치에 따라 맞추어 가는 게 인간의 모습이다. 나의 사회적 지위에 걸맞게 품위를 유지해야 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일을 해야 하고, 돈도 많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반문해보자.사회가 원하는 삶을 산다고 행복한가?다른 사람이 인정해줄 때 느끼는 기쁨이 얼마나 갈까?사회적 통념을 모를 때의 어린아이 모습을 생각해보자. 누가 뭐라고 하든지 어린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한다. .그리고 그것에서 기쁨을 느낀다. 어린아이는 놀이할 때는 다른 사람의 평가를 개의치 않는다.그저 놀이에 몰입해서 기쁨을 느낄 뿐이다. 그런 놀이를 통해서 새로운 창조를 시도한다. 외부의 기대와 사회적 통념보다는 내부의 힘에 쫓아 살아가는 것이 어린아이이다. 어떤 면에서는 어린아이는 어른의 좋은 스승이 될 수가 있다. 어린아이의 자기 주도적인 욕망을 배울 필요가 있다.일상의 정해진 틀 속에서 허우적대고, 자기 삶의 의미가 희미해진다면 조금씩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삶의 범위를 넓혀 가다 보면 우리의 행복의 크기도 그만큼 커지지 않겠냐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우리네 어른들의 삶이 너무 팍팍 하다 보니깐 위에 적힌 대로 현실적으로 살아가기 힘들다는 것은 나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어린아이처럼 살아갈 날을 기대하고 희망하고 조금씩이라도 준비해 나간다면 그런 날이 조금 더 빨리 오지 않냐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본래 고독한 존재이다-

인간의 삶을 좀 자세히 분석해보면 어릴 때는 부모님들이 돌보아주지마는 초등학교 입학 후부터는 부모의 양육보다는 거의 홀로 학교생활을 해나가야 한다. 성년이 되었을 경우에는 약육강식의 사회 속에 던져져서 모든 문제를 홀로 맞닥뜨리고 …

고독은 자기발전의 계기이다.

고독은 회피해야 하고 없어져야 할 시간으로 생각하는 게 보편적인 사람의 인식이다. 하지만 고독의 시간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의 판도가 바뀔 수가 있다. 그것은 고독의 순간이야말로 자신과 세상을 진지하게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깨우침은 고독의 시간을 통한 사색을 통해서만 일어날 수가 있다. 읽었던 책 내용이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들었던 말들은 사색을 시간을 통해서 뇌리에서 되새김질 되고, 그 과정에서 자기 삶의 문제에 응용 될 수가 있다. 지식이라는 식자재가 사색이라는 요리과정을 통하여 자신의 입맛에 맞는 지혜라는 음식이 탄생하는 것이다. 나는 고독할 때면 늘 홀로 산책하는 시간을 가지곤 한다. 산책하는 동안 나 자신과의 대화, 세상과의 대화를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그러다 보면 새로운 깨달음의 기쁨과 새로운 통찰의 희열에 고독감은 …

자존감에 대해서

요즘 자존감이란 용어가 유튜브 등에서 많이 회자하는 것 같다.자존감은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의 척도를 말한다.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이고, 어떤 성과를 이루어 낼만 한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을 자아 존중감, 자존감이라고 부른다 대충 포털에 검색해봐도 높이는 방법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많은 글이 나온다.대충 생각해봐도 높이는 방법은 자기 자신의 삶에 만족하면 자신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남들이 자신을 아무리 칭찬해주고, 공감해주어도 그런 다른 사람의 반응은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결국 자신의 삶이 얼마나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는지는 스스로 알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자존감을 올리는 방법을 이야기해보면 자기 일을 찾는 것이라고 제일 중요하다고 본다.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이란 그 일이 함으로써 스스로 기쁨을 느끼게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일을 스스로 열심히 하게 되고, 꾸준히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그 일에 대해서 빨리 성장하게 된다. 실력이 좋은 만큼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고 좋은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 일을 하는 과정도 재미있고, 결과도 좋고, 사회적으로 인정도 받으면 당연히 자존감은 상승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자신의 취향과는 상관없이 목표를 정하고 열심히 하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이다. 자신의 취향과는 동떨어진 일을 하면 그 일에 기쁨이 있을 리 만무하고, 얼마 못 가서 포기하게 된다. 그러면 스스로 자괴감이 느껴지게 된다. 오히려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무조건 목표를 정하고 열심히 하라는 말을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그 사람의 취향이 먼저이지 목표가 먼저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일을 하면 자연스럽게 목표라는 것이 상정되기 때문이다. 과정이 기쁘다면 좋은 결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하는 일에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한 의존성이 그리 크지 않고, 삶의 기쁨과 자존감의 정도가 지속적이기 마련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평가에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스스로의 삶이 만족한데 굳이 다른 사람의 평가에 흔들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평가에 흔들린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 만족이 없다는 증거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강한 정신의 사람이 행복한 이유

유튜브 신경정신과 의사의 영상강의를 들었다. 우리의 감정에 관한 이야기였다. 우리의 감정은 주관적이라는 주장이다. 이 말은 어떤 상황에 부딪혔을 때 사람마다 나타나는 감정은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면 이전에 유치원 …

생각하는 힘은 인생을 좌우한다

생각하는 힘은 사고력과 동일한 의미라고 보면 된다. 즉 생각하고 궁리하는 힘이다. 우리 주변의 일이나 현상은 딱 보면 그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경우는 대개 드물다, 대개 복잡하고 긴 시간의 생각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