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은 의심의 대상이다

옛날 역사를 들여다보면 가장 큰 죄는 반역죄이다. 그 죗값은 관련된 자들은 죽임을 당한다. 그냥 죽임을 당하는 게 차원이 아니라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느끼게 만들면서 서서히 죽게 만든다. 그리고 전혀 관련 없는 삼족까지도 연좌제라는 족쇄 때문에 멸족한다. 반역죄의 존재 이유는 오로지 기존 기득권의 권력 유지를 위한 것일 뿐이다. 전통적인 기득권유지의 방법은 반역죄처럼 하지 말라는 식의 죄를 정해놓고 가혹한 형벌을 내리는 억압적 형태이었다. 옛날까지 갈 필요 없이 몇십 년 전 독재정권에서도 정권에 대한 반대에 대해서는 감금, 폭행, 고문을 자행했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기득권층의 자신의 권력 유지의 방법들은 교묘하게 진화 시켜 왔다. 그중에서 사회의 유지를 위해서 모두가 지켜야 할 도덕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그중에 하나가 “겸손”이라는 도덕의 의미 왜곡이다. 현재 사회적으로 겸손이 사용되는 구체적인 사례를 보면 어떤 공동체에서 이러쿵저러쿵 개인이 말을 많이 하거나, 조직 지도자의 결정에 반대를 하는 경우를 겸손하지 못하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말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지도자의 말에 복종하고 지시에 잘 따르는 사람들을 겸손하다고 이야기한다. 겸손의 본래 의미는 자기 생각을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지 않고, 항상 자기 생각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고, 타인의 바른 생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마음 상태이다. 오히려 자기 생각을 적극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획일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겸손하지 못하다고 죄악시하는 건 기득권층의 교묘한 술수가 개입된 것이다. 기존의 금지규정을 통한 권력 유지는 개인의 반발에 대한 힘으로 억압을 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다. 하지만 도덕의 의미 왜곡을 통하는 방법은 공동체의 평안을 위한 명분으로 인해 구성원의 자발적 복종을 하게 한다. 그리고 공동체 내에서 각 개인끼리 서로 간에 겸손하기를 은연중에 강요하게끔 만든다. 즉 기득권층으로서는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고, 부작용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기득권유지 전략이 되는 셈이다. 기존 질서와 도덕은 전부 다 진리일 수는 없다. 공동체 구성원의 명시적 합의를 거쳤다고 반드시 진리가 되고 무조건적인 복종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세월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