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 이분법은 인간의 본성인것 같다

몇 년 전에 어린이 미술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아이들이 심심할까 봐 차 안에서 음악을 들어주곤 하였다. 그런데 절대 틀어서는 안되는 음악이 있었다. 워너원과 방탄소년단 노래이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서로 싸우기 때문이다. 워너원의 팬인 아이들은 방탄소년단의 음악이 나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온갖 험담을 멈추지 않았고, 그런 음악을 튼 나에게도 불만을 표출하였다. 그리고 방탄소년단의 팬인 다른 아이들에게 온갖 비방을 일삼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하도 열받아서 나는 워너원과 방탄소년단 시디를 아이들 보는 앞에서 휴지통에 버려버리는 퍼포먼스까지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다음부터는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지 못하는 아이들에 대한 벌칙으로 내가 좋아하는 트로트만 차에서 매일 틀었다.

 

방탄소년단 음악이든 워너원 음악이든 각각의 개성이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각각의 취향에 따라서 선택하면 되고, 내가 어떤 음악을 좋아하듯이 다른 사람의 취향을 존중하면 된다. 그런데 제대로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은 아이들이 흑백논리에 사로잡혀 있는 걸로 봐서는 이런 흑백논리는 인간의 본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런 흑백논리는 사지선다형으로 표현되는 우리나라 교육시스템 속에서 확대 강화된다. 마치 세상살이의 모든 문제의 답은 하나이고 다른 답은 틀렸다는 식의 관점은 성인이 되어서도 유지된다.

 

이런 흑백논리는 심리학에서는 방어기제와 연결된다.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란 자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속이거나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여, 감정적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심리 의식이나 행위를 가리키는 정신분석 용어이다. 방어기제 중에서 동일시라는 것이 있다. 자기 자신과 다른 존재를 동일시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정치의 영역에서 동일시 방어기제는 자주 발현된다. 내가 지지하는 정당은 무조건 옳고, 그 반대편에 있는 정당은 뭘 하든지 잘못되었다는 식이다. 나와 특정 정당을 동일시하고 특정 정당이 선거에 승리하였을 때 마치 자신의 승리인 것처럼 쾌감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마치 자기가 좋아하는 스포츠팀이 승리할 때 쾌감을 느끼듯이. 위의 어린아이들의 경우에도 워너원 또는 방탄소년단을 자신과 동일시하였다.

 

영화 중에 “남한산성”이라는 영화가 있다. 물론 스토리는 뻔하다. 병자호란이라는 시대 상황에서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임금과 신하와 백성들 모습과 청에 대한 투쟁 과정, 그리고 청나라에 대한 항복의 치욕적인 역사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역사에 조금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그 스토리는 뻔하고 결과는 쉽게 예측 가능하다. 하지만 영화는 전체적인 스토리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과정에 주인공의 대사 한마디에서도 깊이 있는 의미를 찾을 수가 있다. “정녕 전하께서는 칸의 신하가 되시겠습니까? 그 삶은 살아도 죽은 것입니다 “라고 말하면서 조선의 자존심을 지키면서 꿋꿋이 투쟁하자는 김상현과 ​”만백성과 더불어 죽음을 각오하지 마옵소서. 부디 치욕을 견디더라도 백성의 살길을 열어 주시옵소서”라고 말하면서 일단은 화친을 하여서 조선의 왕조를 유지하고 차후를 도모하자는 최명길의 대사이다. 누구의 말이 옳고 누구의 말이 틀린 것일까? 쉽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고, 선악이 그리 명쾌하지 않다. 이 영화는 명쾌한 선악의 이분법에 함몰된 대중의 생각에 깊은 성찰의 울림을 주고 있다고 본다.

 

위의 아이들의 경우 다름과 틀림의 문제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틀림은 사실이나 이치, 기준, 계산 따위에 어긋나는 것이고(wrong), 다름은 같지 아니한 것(different)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틀린다는 것의 전제는 정답이나 원칙, 기준이 있다는 것이고, 다르다는 것은 단지 차이가 있을 뿐 옳고 그르거나, 맞고 틀리는 문제는 아니라는 뜻이다. 다름은 존중의 대상이고 틀림은 존중의 대상이 아니다. 다름은 취향 판단이고 틀림은 선악 판단이다. 그리고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어떤 사람이든 오류를 범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즉 사람은 완전한 악인과 완전한 선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흑백논리는  어떤 사람과 단체에 대한 절대적인 신봉은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나 단체는 악마로 취급하게 만든다. 그리고 악마는 척결의 대상이 되고, 폭력과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폭력과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한 반대편의 사람들은 복수의 칼날을 벼리게 되어서 사회는 갈등과 반목의 굴레를 헤매게 된다. 우리나라 교육이 이런 사회 현실과 병폐를 제대로 직시해서 그것을 반영하는 교육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인간의 보편적 오류가 있는 경우에는 교육을 통해서 길러진 생각하는 힘으로 수정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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